안녕하세요 이꼬마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역사는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입니다.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은 아웅산 수치, 아웅산 테러라 불리며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옛 수도인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소 묘역에서 북한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총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은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그때 당시 엘리트였던 부총리 서석준, 외무부장관 이범석, 상공부장관 김동휘 등 고위급 관료와 수행원이 사망하였습니다.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대통령도 사망할 뻔한 대규모 테러 사건입니다.
1.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전개
전두환 대통령은 비공식 수행원과 공식 수행원 22명과 함께 17박 18일 일정의 공식 해외 순방길에 올랐습니다.
미얀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순방길의 첫 방문지이며 그날은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에서 참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부총리였던 서석준은 수행 공무원들과 경호원들을 데리고 행사 준비 및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으며 같은 시각 오전 10시경 전두환 대통령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하였습니다.
예행 연습을 마치고 대통령을 맞이할 채비를 마친 수행원들은 대통령 측근으로부터 차량 정체로 인해 대통령님이 약 30분 정도 지연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연락을 받은 서석준 부총리는 한번 더 애국가 예행연습을 합니다.
미리 대기해 있던 폭탄 테러 용의자인 신기철은 전두환이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첩보를 통해 인지한 상태였으며 예행연습 중에 나온 음악을 듣고 전두환이 도착했다고 오인하여 오전 10시 28분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폭탄 스위치를 작동시켰습니다.
예행연습 당시 미얀마 한국 대사인 이계철이 입장했는데 이계철 대사 역시 대머리인 탓에 신기철은 이계철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하였으며 이 폭발로 예행 연습중이었던 부총리 서석준, 외무부 장관 이범석 등 17명이 현장에서 즉사하였습니다.
당시 합동참모의장 이기백은 육군 대장답게 각종 약장과 휘장들을 달고 있었는데 이것이 방탄 역할을 해 살아남았습니다.
교통 체증으로 늦지 않았다면 전두환 대통령 역시 북한의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테러소식을 접한 전두환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으며 미얀마는 국민 영웅 아웅산의 묘소에 테러가 발생한 것에 분노를 표했으며 테러를 일으킨 북한과 국교를 단절함과 동시에 국가승인을 취소하였습니다.
이 테러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 60여 개국도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 혹은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2. 아웅산 테러 이후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한민국보다 북한이랑 체제적으로 동일하여 더 가까웠습니다.
미얀마는 자국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묘역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킨 북한에 격노하여 국교를 단절시켰습니다.
또한 미얀마 경찰은 범인 중 신기철을 인근에서 사살하고 처음에 진 씨라는 성으로 알려졌던 강민철 상위와 김진수 소좌를 테러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현장에서 사망한 17명의 정부 관료는 합동 국민장이 거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축제를 모두 취소였으며 모든 방송 일정을 미루고 아웅산 테러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하였습니다.
3. 아웅산 테러 범인
아웅산사태의 범인은 북한의 공작원으로 3인조로 테러를 계획하였습니다. 이들은 테러 직후 양곤강을 건너 중국 방향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북한에서 접전지인 양곤강에 배를 보낸다는 약속을 북한 측에서 약속을 어겼습니다.
공작원 3명인 김진수, 신기철, 강민철은 각자 도망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자국 공작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며 강도 높은 사상교육으로 젊은이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일회성으로 이들을 사용하고 처참하게 버리는 등 인권을 무시한 북한 체제를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각 신기철과 강민철이 양곤강에서 2명의 어부에게 부탁하여 배를 탔지만 이 소식을 접한 어부 중 한 명이 복통을 호소하는 척하며 배에서 내렸고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신기철은 미얀마 경찰에게 사살되었으며 강민철은 도주했으나 수류탄 오발로 외팔이가 된 채로 체포되었습니다.
북한에선 공격용 수류탄이 아닌 안전핀을 뽑으면 바로 폭발하는 자살용 수류탄을 주었으며 공작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수류탄을 사용하다가 외팔이가 되었습니다.
4. 체포 이후의 테러범
생포한 두 명의 테러리스트 김진수와 강민철은 미얀마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김진수는 1986년 사행이 집행되었습니다.
강민철은 미얀마 인세인 감옥에서 복역하다 2008년 5월 18일 53세로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29년간 미얀마를 방문하지 않다가 2012년 5월 14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얀마 테러 이후 처음으로 방문하였습니다.
5. 테러범들은 북한의 소속인가?
아웅산 테서가건의 주범인 강민철은 북한의 공작원이 아닌 북파공작원이었다는 주장도 나왔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사건 직후 북한 김일성 집단의 소행임을 주장하였으며 귀국 한 뒤 비상경계태세를 발동하였으며 북한에 대해 보복과 응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사건 발생 직 후 북한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안이라고만 입장을 밝혔지만 강민철은 자신이 북한 공작원임을 시인하였습니다.
이상 아웅산 테러 사건, 아웅산 수치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옛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은 한국에 대한 도발이 꾸준했으며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집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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